🔬 1분 토막 과학

높은 산에선 물이 100도가 되기 전에 끓는다

끓는점은 100도가 아니다. 기압이 허락하는 온도가 끓는점이다.

끓는점은 고정값이 아니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학교에서 배운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조용히 생략된 조건이 하나 있다. "1기압에서." 조건이 달라지면 끓는점도 달라진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기압이 낮아진다. 기압이 낮아지면 물은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는다. 에베레스트 정상(8,849m)에서는 물이 약 71도에서 끓는다. 컵라면을 그 온도의 물에 부으면 면이 제대로 익지 않는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끓는다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부터 짚어야 한다.


끓음의 정체 — 기포가 살아남는 조건

물을 가열하면 표면에서 조금씩 수증기가 올라온다. 이건 끓음이 아니라 증발이다. 진짜 끓음은 다르다. 물 안쪽에서 기포가 생기고, 그 기포가 꺼지지 않고 수면까지 올라와 터질 때 비로소 끓는다.

기포가 살아남으려면 조건이 있다. 기포 안의 압력(증기압)이 바깥에서 누르는 압력(대기압)보다 크거나 같아야 한다. 바깥에서 너무 세게 누르면 기포는 생기자마자 찌부러져 버린다.

증기압은 온도가 높을수록 커진다. 물 분자들이 더 빨리 움직이며 기체로 탈출하려는 힘이 세지기 때문이다. 끓는점이란 바로 "증기압이 대기압과 같아지는 온도"다. 이 온도에 이르면 기포가 살아남아 물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결론: 대기압이 낮아지면, 더 낮은 온도에서도 증기압이 대기압과 같아진다. 그러니 더 일찍, 더 낮은 온도에서 끓는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압은 내려간다

지구의 대기는 중력에 의해 지표 가까이 더 많이 쌓여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위에서 누르는 공기 기둥이 얇아져 기압이 낮아진다.

위키백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고도별 끓는점은 다음과 같다.

고도 대표 장소 물의 끓는점
0m 바닷가(해수면) 100도
1,609m 미국 덴버 약 95도
1,947m 한라산 정상 약 93~94도
2,240m 멕시코시티 약 93도
2,744m 백두산 정상 약 90~91도
3,640m 볼리비아 라파스 약 87도
5,364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약 81~82도
8,849m 에베레스트 정상 약 71도

한라산 정상에서는 물이 67도 일찍 끓는다. 백두산에서는 910도 일찍. 에베레스트에서는 무려 29도나 일찍 끓는다. 그 온도는 우리가 샤워할 때 쓰는 온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밥이 설익는 이유 — 온도와 익힘은 다른 문제

이제 실생활로 연결해보자. 산 위에서 밥을 지으면 밥이 설익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왜일까.

밥이 익으려면 쌀 전분이 충분한 온도에서 일정 시간 가열되어야 한다. 평지에서는 물이 100도를 유지하며 밥을 익힌다. 그런데 산 위에서는 물이 90도나 87도에서 이미 끓어버린다. 냄비 뚜껑을 닫아도 물은 그 온도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다. 끓는 동안에는 온도가 고정되기 때문이다. 낮은 온도에서 익히니 시간이 훨씬 걸리고, 충분히 기다리지 않으면 속이 설익는다.

옛날 산악 등반대가 고지에서 냄비 뚜껑에 돌을 올려놓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뚜껑을 누르면 냄비 안 압력이 올라가고, 끓는점이 조금이나마 높아진다.


반대 방향의 응용 — 압력솥

같은 원리를 반대로 쓰면 압력솥이 된다.

압력솥은 밀폐된 뚜껑으로 내부 압력을 높인다. 내부 압력이 대기압보다 높아지면, 더 높은 온도에 이르러야 증기압이 내부 압력을 이길 수 있다. 즉, 끓는점이 올라간다. 일반 압력솥 내부의 물은 약 120도에서 끓는다. 100도짜리 물이 아니라 120도짜리 물로 조리하니 음식이 훨씬 빠르게 익는다.

가마솥 밥이 맛있다는 말도 비슷한 원리다. 두껍고 무거운 솥뚜껑이 위에서 누르는 힘을 더해 냄비 안 압력을 살짝 높여준다.


이 관계를 수식으로 담은 두 사람

기압과 끓는점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정리한 것은 19세기 과학자들의 업적이다. 프랑스 공학자 에밀 클라페이롱이 압력과 온도, 상변화의 관계를 처음 정식화했고, 독일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1850년경 열역학 이론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를 더 정교하게 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물이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롱 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으로 특정 기압에서 어떤 액체가 몇 도에서 끓는지 계산할 수 있다.

오늘날 이 방정식은 기상 예측, 석유 정제, 요리 과학, 우주 공학까지 광범위하게 쓰인다.


한 줄 정리

끓는점은 물질의 고유한 값이 아니라, 그 순간 주변 기압이 정해주는 값이다. 100도라는 숫자는 "지상 평지의 기압 아래"라는 조건이 붙어야 성립한다. 산 위에서, 또는 압력솥 안에서 물은 다른 온도에서 끓는다. 자연은 고정된 숫자가 아니라 조건과 원리로 움직인다.

출처

#과학#끓는점#기압#고도##증기압#압력솥#물리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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