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수천 년 동안 몰랐던 것
인류는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셈을 했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고, 별의 움직임을 예측했으며, 복잡한 세금 체계를 운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계산 속에서도 오랫동안 빠져 있던 것이 있었다. 바로 0이다.
'아무것도 없음'을 하나의 수로 쓴다는 발상.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이 개념이 완성되기까지 인류는 수천 년을 허비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히 게으름이 아니었다.
자리만 채웠지, 수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0 비슷한 것을 쓴 건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인들이다. 기원전 300년 무렵, 그들은 숫자 사이 빈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쐐기 모양 기호 두 개를 비스듬히 찍었다. 예를 들어 '301'처럼 중간에 비어 있는 자리를 나타낼 때 그 기호를 넣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자리 채움 기호였다. 문장 끝에 마침표처럼, 자리가 비었다는 표시일 뿐이었다. 이 기호로 산술 연산을 하거나, 이것 자체를 수로 취급하는 일은 없었다. 마야 문명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4세기부터 독자적으로 조개(shell) 모양 글리프를 0 기호로 썼지만, 그것은 달력 계산의 빈 칸 표시에 불과했다.
그리스와 로마는 왜 외면했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위대한 수학자를 여럿 배출했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피타고라스까지. 그런데 그들의 수학에는 0이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그리스 수학은 본질적으로 기하학이었다. 숫자는 선의 길이, 넓이, 부피를 나타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 길이나 넓이가 있을 리 없으니, 0은 수가 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허(void)'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란 철학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고 봤다. 이런 사유 체계에서 0은 설 자리가 없었다.
로마인들은 더 실용적인 이유로 외면했다. 로마 숫자 I, V, X, L, C, D, M은 위치 개념이 없는 체계다. 100을 100번째 자리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C라는 별도 기호를 쓰니, 빈 자리를 표시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로마 숫자에는 처음부터 0의 자리가 없었다.
인도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결정적인 전환은 인도에서 왔다. 5세기경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리아바타가 위치 기반 수 체계에서 0을 자리값 기호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0 기호의 물증이 인도에서 발견됐다. 바로 박샬리 필사본(Bakhshali Manuscript)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보들리안 도서관이 소장 중인 이 자작나무 껍질 문서에는 수백 개의 점 형태 0 기호가 담겨 있다. 2017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일부 낱장은 3세기에서 4세기 사이 것으로 밝혀졌다. 이전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0 기호보다 수백 년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0은 여전히 자리 채움 기호였다. 진짜 혁명은 100여 년 후에 일어났다.
브라마굽타, 0에 생명을 불어넣다
서기 598년 인도에서 태어난 브라마굽타는 628년, 그의 나이 서른 살에 『브라마스푸타싯단타(Brahmasphutasiddhanta)』를 저술했다. 인도 우자인 천문 관측소의 수장이었던 그는 이 24장 분량의 방대한 수학·천문학 논문에서 인류 최초로 0을 수 자체로 정의했다.
그가 세운 규칙들은 지금 봐도 정확하다.
- 어떤 수에 0을 더하거나 빼도 그 수는 변하지 않는다.
- 어떤 수에 0을 곱하면 0이 된다.
- 양수는 '다나(dhana)', 즉 재산. 음수는 '리나(rina)', 즉 부채. 그리고 0은 '슌야(shunya)', 즉 공(空)이라 불렀다.
슌야. 비어 있음. 불교와 힌두 철학에서 공(空)의 개념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품은 상태다. 인도의 철학적 전통이 수학의 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0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단, 브라마굽타도 한 가지는 틀렸다. 0을 0으로 나누면 0이라고 했는데, 현대 수학은 이를 정의 불가능(undefined)으로 본다.
아랍을 거쳐 유럽까지, 그리고 또 한 번의 저항
인도의 0은 이슬람 황금기를 통해 전파됐다. 9세기 바그다드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에서 활동한 수학자 알 콰리즈미가 인도 수 체계와 0을 이슬람 세계에 소개했다. 알 콰리즈미의 이름은 훗날 '알고리즘(algorithm)'의 어원이 됐고, 그가 정립한 수학은 '알지브라(algebra)', 즉 대수학의 뿌리가 됐다.
12세기에는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가 『리베르 아바치(Liber Abaci)』에 아라비아 숫자와 0을 담아 유럽에 소개했다. 그러나 유럽의 반응은 냉담했다. 1299년 피렌체는 아라비아 숫자 사용을 법으로 금지했다. 이유는 황당하다. 상인들이 숫자 뒤에 0을 몇 개 더 붙여 금액을 위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럽이 0을 완전히 수용하기까지 또 한 세기 이상이 걸렸다. 15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아라비아 숫자 체계와 0이 사회 전반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것도 없음'이 모든 것을 바꿨다
0 하나가 없으면 오늘날의 컴퓨터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디지털 정보는 0과 1의 조합이다. 음수의 체계도, 방정식도, 좌표계도 0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고, 로켓의 궤도를 설계하고, 금융 시장을 모델링하는 것 모두 0 위에 서 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하지 못한 단 하나의 발상. '아무것도 없음'을 수로 쓰는 것. 그 발상 하나가 인류 문명의 방향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