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J 없이 살았다
1597년 초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제는 Romeo and Iuliet다. J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알파벳 26자는 처음부터 26자가 아니었다.
로마인의 알파벳은 23자였다
고대 로마의 라틴 알파벳은 현대와 달리 23자로 운영됐다. 오늘날의 J·U·W가 없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자리를 다른 글자들이 겸직했다는 점이다.
- I가 모음 'i' 소리와 자음 'y·j' 소리를 모두 담당했다.
- V가 모음 'u' 소리와 자음 'w·v' 소리를 모두 담당했다.
즉 "Julius(율리우스)"는 라틴어로 "IVLIVS"였다. 한 글자가 두 가지 소리를 동시에 맡았던 셈이다. 로마인들에게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들은 맥락으로 구분했다.
W는 중세 노르만 필경사가 만들었다
7세기, 라틴 알파벳이 영어 표기에 쓰이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겼다. 영어에는 라틴어에 없는 /w/ 발음이 있었다. 초기 영국 필경사들은 VV 또는 UU를 나란히 써서 이 소리를 표기했다. 그게 지금의 W다. 영어에서 W를 '더블유(double-U)'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8세기 영국에서는 룬 문자에서 온 윈(ƿ) 이라는 별도 기호가 W 역할을 잠시 맡기도 했다. 그러나 11세기 노르만 정복 이후 노르만 필경사들이 UU를 이어 쓴 형태를 다시 도입했고, 1300년경에는 W가 영어 표기의 표준 자리를 차지했다.
U는 V에서 쪼개졌다
중세 내내 U와 V는 같은 글자의 다른 모양이었다. 단어 시작에는 V, 단어 중간에는 U를 쓰는 식으로 위치에 따라 구분했을 뿐, 의미상 같은 글자였다. 르네상스 이후 모음과 자음을 시각적으로 분리하자는 흐름이 생기면서 U(모음)와 V(자음)가 정식으로 갈라섰다.
J는 가장 마지막에 들어왔다
J는 알파벳 26자 중 가장 늦게 합류한 글자다. 1524년,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법학자 잔 조르조 트리시노가 I와 J를 서로 다른 소리를 가진 별개 글자로 공식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I는 모음, J는 자음 — 이 간단한 분리를 주장하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다.
영어 성경에서도 변화는 느렸다.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에는 여전히 "Iesus"와 "Ioseph"가 쓰였다. J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629년 케임브리지판 성경 개정본부터였다. 그리고 1633년에야 영어 문법서에 J가 독립 글자로 수록됐다.
셰익스피어는 J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의 시대는 아직 I의 시대였다.
그래서 왜 26자에서 멈췄을까
멈춘 게 아니라 거기까지 오는 데 수백 년이 걸린 것이다. 알파벳은 로마 23자에서 시작해 W(중세), U(르네상스), J(17세기 초)가 차례로 합류하며 26자가 됐다. 언어는 필요가 생겨야 움직인다. 없어서 불편할 때, 그때야 새 글자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