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남긴 건 명령서가 아니라 일기였다
서기 170년대, 다뉴브 강변의 군막 안. 로마 제국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가 혼자 앉아 그리스어로 무언가를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칙령도, 전략 문서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메모였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CE)는 19년간 로마 황제 자리에 있었습니다. 재위 기간 대부분을 역병과 전쟁 속에서 보냈습니다. 게르만 부족의 침입으로 북쪽 국경이 불안했고, 안토니누스 역병(165180 CE)이 재위 4년 차부터 약 15년간 제국을 휩쓸며 약 오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황제 자신도 평생 지병에 시달렸고, 매일 약을 복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매일 밤 노트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썼습니다.
"쓸데없는 인상은 지워라. 충동을 억제하라. 욕망을 꺼라."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읽는 『명상록(Meditations)』의 한 구절입니다. (9권 7절)
누구를 위해 쓴 글인가
『명상록』의 그리스어 원제는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on)', 직역하면 "자신을 향한 글들"입니다. 이 제목은 마르쿠스가 직접 붙인 것이 아닙니다. 그가 죽고 700년이 지난 서기 900년경, 필사본이 발견되었을 때 붙여진 이름이죠.
마르쿠스는 이 글을 출판할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은 이 책을 두고 "초자연을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한 복음서"라 불렀습니다. 그만큼 개인적이고 진실합니다. 남에게 보이려는 포장 없이, 황제가 자신의 약함과 흔들림을 그대로 적었습니다.
현존하는 완전한 필사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4세기에 만들어진 코덱스 바티카누스 그라에쿠스 1950으로, 1683년 이탈리아 개인 소장가로부터 바티칸 도서관에 입수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인쇄 출판된 것은 1558~1559년경, 빌헬름 실란더(Wilhelm Xylander)가 그리스어 원문과 라틴어 번역을 편집하고 주석을 달아 취리히에서 펴내면서였습니다(콘라드 게스너가 출판을 기획·의뢰하고, 그의 사촌 안드레아스 게스너가 인쇄했습니다). 쓰인 지 거의 1,400년 만에 세상에 나온 셈입니다.
황제의 스승은 노예 출신 철학자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을 독학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스승 루스티쿠스가 에픽테토스의 『강의록(Discourses)』을 건네준 것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에픽테토스(50~135 CE)는 원래 노예였습니다. 로마 귀족 집안의 노예로 태어나, 훗날 자유를 얻어 철학자가 되었죠. 황제와 노예. 이 두 사람은 살아생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에픽테토스가 죽은 뒤에야 마르쿠스가 황제가 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마르쿠스는 자신의 기록 1권에서 에픽테토스에게 배운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
에픽테토스가 남긴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그리스어로 '에프 헤민(eph' hēmin)'과 '우크 에프 헤민(ouk eph' hēmin)', 즉 "우리에게 달린 것"과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의 구분이었습니다. 이것이 후대에 통제의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이라 불리게 됩니다.
핵심 하나 —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스토아 철학이 던지는 가장 실용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여기서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씨, 타인의 평가와 행동, 과거에 이미 벌어진 일, 나의 건강과 몸의 노화, 죽음. 이것들은 아무리 황제라도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반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영역입니다. 그 일에 대한 나의 판단, 태도, 반응, 행동. 즉,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이죠.
마르쿠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사물들은 영혼에 닿지 못한다. 그것들은 영혼에 접근할 수도, 영혼을 움직이거나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영혼은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방향을 잡는다." (명상록 중)
우리를 괴롭히는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흔한 오해 — 이분법은 무감각이 아니다
통제의 이분법을 처음 접하면 이런 오해가 생깁니다. "결국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는 뜻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쿠스는 전쟁터에서도 병사들의 목숨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역병으로 죽어가는 시민들을 위해 제국의 자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결과에 무감각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9권 32절에서 그는 씁니다.
"당신은 판단 속에 자리한 수많은 불필요한 고통을 지워버릴 힘이 있고, 그럼으로써 마음속에 넓은 공간을 얻어 온 우주를 품을 수 있다."
결과가 아니라 태도를 통제하는 것. 그것이 스토아가 말하는 자유입니다.
12권, 400개 이상의 단상
『명상록』은 서사가 있는 소설이나 체계적인 철학서가 아닙니다. 전체 12권, 400개 이상의 단상으로 이루어진 파편들입니다. 순서도 없고, 같은 생각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글쓰기가 목적이 아니라, 생각을 다잡는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권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매일 그때 가져야 할 반응을 적어두어라." 마르쿠스는 그것을 황제로서의 삶 내내 실천했습니다.
1권은 나머지 11권과 문체가 달라서, 별도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봅니다. 나머지는 아마도 서기 171~175년, 다뉴브 강변에서의 게르만 원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 삶에 주는 통찰
현대인의 불안 대부분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할 때 생깁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이 불안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 손에 없는 것들이라는 점이죠.
마르쿠스의 지혜는 단순합니다. 그 에너지를 내가 바꿀 수 있는 단 한 가지 — 지금 나의 행동 — 으로 돌리라는 것. 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의 말처럼, 이 책은 역병과 전쟁 속에서도 유효한 복음서였습니다.
황제조차 세상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재위 19년 내내 전쟁은 이어졌고, 역병은 멈추지 않았으며, 아들 코모두스는 역사가 혹독하게 평가하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마르쿠스는 매일 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연습을 놓지 않았습니다.
한마디 추천
짧은 단상들의 모음이라 어디서부터 펼쳐 읽어도 됩니다. 하루에 한 문단씩, 마음이 흔들릴 때 펴 보기 좋은 책입니다. 저작권이 만료된 고전이라 원문과 번역 모두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이 두껍게 느껴지면 9권부터 읽어보세요. 황제의 목소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들리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