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한 말
역설처럼 들린다. 수천 년 동안 전쟁터의 장군들이 탐독해 온 책, 마오쩌둥과 나폴레옹도 읽었다는 그 책이 정작 하는 말은 이것이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 그것이 최고의 용병술이다.
—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
『손자병법』은 기원전 5세기 무렵 춘추시대 말기의 군사전략가 손무(孫武)가 썼다고 전해진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손무는 제(齊)나라 출신으로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를 섬기며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가 남긴 병법서가 바로 이 13편이다.
2,500년 만에 죽간으로 뒷받침된 책
흥미로운 것은 손자병법의 실재가 한동안 논란이었다는 점이다. 일부 학자들은 손무라는 인물 자체가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을 제기했고,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사실 동일 저자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 흐름이 바뀐 것은 1972년이다. 중국 산둥성 린이현 은작산(銀雀山)의 전한시대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손자병법 13편이 발굴된 것이다. 같은 무덤에서 1,400년 넘게 실전(失傳)되었던 손빈병법도 함께 출토되어, 손자(손무)와 손빈이 서로 다른 인물·저작임이 강하게 뒷받침됐다. 땅 속에서 이천 년 넘게 잠들어 있던 대나무 조각들이 이 책의 고대성과 텍스트의 실재를 뒷받침한 셈이다. 단, 은작산 발굴이 손무의 실존 자체를 완전히 확정지은 것은 아니며, 관련 학술 논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책의 핵심 구조: 싸움의 4단계
손자병법 3편 모공편(謀攻篇)은 전쟁을 네 단계로 나눈다.
- 벌모(伐謀): 적의 전략 자체를 무너뜨린다 — 최상책
- 벌교(伐交): 적의 외교 동맹을 끊는다
- 벌병(伐兵): 적의 군대를 격파한다
- 공성(攻城): 성을 직접 공격한다 — 최하책
놀랍게도 '직접 싸우는 것'은 제일 아래에 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을 공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때만 한다." 적을 에워싸는 데 수개월이 걸리고, 공성 장비를 만드는 데 또 석 달이 걸린다. 그 사이 병사는 죽고, 재원은 소모되고, 결국 이겨도 나라가 피폐해진다. 손자가 말하는 승리란 그런 소모를 피하는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 흔히 틀린 그 문장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누구나 아는 말이다. 그러나 원문은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아니다. 손자가 쓴 것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다. 불태(不殆)는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게 아니라, 백번 싸워도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원문 전체를 보면 더 분명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적도 알고 나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적은 모르고 나만 알면 절반을 이기고 절반을 지고, 둘 다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진다는 것이다.
손자는 무적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무지에서 비롯되는 패배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와 적을 모두 알면, 최소한 섣불리 싸워서 지는 실수만큼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책이 아니라 싸움을 피하는 법에 관한 책
왜 이 책이 지금도 읽히는가. 전략·경영·스포츠·외교 어디서든 손자병법이 인용되는 이유는 하나다. 이 책의 본질이 '어떻게 싸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싸움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손자는 말한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선 중의 최선이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니다. 싸우지 않아도 될 상황을 만들어내는 일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구한다는 통찰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면충돌 없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한 줄
싸움을 잘하는 것보다, 싸움이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 높은 기술이다. 이천오백 년 전 손무가 죽간에 새긴 이 원칙은, 오늘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