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만들어 낸 신화
경제학 교과서를 펼치면 거의 어김없이 이 문구가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손." 개인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시장이 알아서 사회 전체를 이롭게 만든다는, 자유 시장주의의 핵심 원리로 통한다.
그런데 이 표현이 애덤 스미스의 대표작 『국부론』에 딱 한 번만 등장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대한 5권 분량의 『국부론』 어딘가에 단 한 줄. 그것도 무역 제한 정책을 비판하는 문맥에서.
더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스미스 자신은 평생 『도덕감정론』을 더 중요한 책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도덕철학자 프랜시스 허치슨 아래 수학했고, 1751년 같은 학교 교수가 되어 1752년부터는 도덕철학 교수직을 맡았다. 경제학자가 아니라 도덕철학자였다.
그가 첫 번째 저서로 세상에 내놓은 책은 1759년 출간된 『도덕감정론』이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지 탐구했다. 핵심은 '공감(sympathy)'이었다. 우리는 타인의 상황에 우리 자신을 대입해 보고, 상상 속의 '공정한 관찰자' 시점에서 행동을 평가한다. 도덕은 신의 명령도, 냉철한 이성도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서 나온다는 주장이었다.
『도덕감정론』은 당대에 큰 호평을 받았다. 스미스는 이 책의 개정판을 죽기 직전까지 손질했고, 자신의 가장 중요한 지적 유산으로 여겼다.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에 있나
그렇다면 『국부론』(1776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정확히 어디에 등장할까. 4권 2장이다. 수입 제한과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스미스는 이렇게 썼다.
"그는 국내 산업을 지지하기 위해, 즉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 외국 산업보다 국내 산업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산업의 산출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도록 이끄는 방식으로, 즉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산업을 운영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목적을 촉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끌린다."
핵심을 짚어보면, 스미스가 말하는 건 상인이 자국에 투자하는 이유다. 상인은 자기가 잘 아는 국내 시장을 선호한다. 그 자기 이익의 결과가 의도치 않게 사회 전체에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범용적인 자유 시장 예찬이 아니라, 무역 제한 정책을 반박하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논증이었다.
그리고 스미스는 이 구절에서 늘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썼다. 정관사 없이, 한정적 의미 없이. 하나의 비유로 가볍게 쓴 표현이었다.
세 번의 등장, 그리고 한 번의 폭발
스미스의 전체 저작을 통틀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세 번 나온다. 1759년 『도덕감정론』에 한 번, 1776년 『국부론』에 한 번, 그리고 사후(1795년) 출판된 에세이 『천문학의 역사(The History of Astronomy)』에 한 번. 이 에세이에서는 '목성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of Jupiter)'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며, 신화적 설명 방식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쓰였다. 스미스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고, 사후 문학 집행인들이 『철학적 주제에 관한 에세이(Essays on Philosophical Subjects)』에 수록해 펴냈다.
세 곳 모두 서로 다른 맥락이다. 보편 법칙을 선언하는 대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표현이 어떻게 경제학의 핵심 원리로 등극했을까? 결정적 계기로 흔히 꼽히는 것은 1948년이다.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쓴 대학 경제학 교과서 『이코노믹스(Economics)』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 팔렸고, 새뮤얼슨은 그 책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사회 전체의 최선을 달성하게 된다"는 시장 자기조정의 보편 원리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미스가 조심스럽게 쓴 비유 하나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자유 시장 교리의 상징이 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 문제' — 두 책의 모순?
19세기 독일 학자들은 스미스의 두 책이 서로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도덕감정론』은 공감과 이타성을 강조하는데, 『국부론』은 자기 이익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이다. 이 논쟁을 독일어로 '다스 아담 스미스 프로블렘(Das Adam Smith Problem)'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오늘날 학계의 주류 견해는 다르다. 두 책은 모순이 아니라 상호 보완한다. 『도덕감정론』은 인간의 사회적·도덕적 동기를, 『국부론』은 그 동기들이 시장이라는 제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룬다. 스미스에게 시장과 도덕은 분리된 세계가 아니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도덕적 감수성이 전제되어야 했다.
실제로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노동자의 처우를 걱정했고, 독점과 담합에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으며, 자본가들이 공공 이익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운다고 경계했다. 맹목적 시장 신봉자의 목소리가 아니다.
통찰 — 오해가 만든 신화
우리는 종종 책보다 책에 붙은 딱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국부론』에는 '시장 만능주의의 성경'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그 딱지가 실제 내용보다 더 널리 퍼졌다.
스미스가 250여 년 전에 던진 진짜 질문은 이것이었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어떤 조건에서 사회에 이로운가?" 조건 없는 답이 아니라, 조건을 묻는 질문이었다.
도덕철학자 스미스가 쓴 단 한 줄의 비유가 어떻게 경제학 이데올로기의 기둥이 됐는지,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교훈이다. 한 문장은 그것을 읽는 시대의 손에 의해 다시 쓰인다.
『도덕감정론』은 저작권이 만료된 공유 저작물이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등에서 원문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