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한 입 요약

다윈은 '적자생존'이라 말한 적이 없다 — 『종의 기원』의 진짜 의미

다윈이 평생 쓴 말은 '자연선택'이었습니다. 적자생존은 다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이었어요.

다윈이 쓴 말은 따로 있었다

1859년 11월 24일, 런던의 출판사 존 머리에서 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초판 천이백오십 부. 출판 당일 모두 팔렸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이었습니다.

이 책이 던진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생물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서서히 변한다. 그 변화를 이끄는 힘을 다윈은 딱 두 단어로 불렀습니다.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환경에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고, 그 형질이 퍼져나간다는 원리였죠.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다윈의 말'이라 알고 있는 표현은 다릅니다. 바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쓰이는 이 말은, 사실 다윈이 만든 표현이 아닙니다.

적자생존을 만든 사람은 철학자였다

1864년,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생물학의 원리(Principles of Biology)』를 쓰면서 한 문장을 남깁니다.

"이 적자생존이야말로, 내가 기계적 언어로 표현하려 한 것이며, 다윈이 자연선택이라 부른 것이다."

스펜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 개념에 자기 식의 이름을 붙인 것이었습니다. 다윈보다 다섯 해 늦게 나온 표현이죠. 다윈은 이 시점에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윈은 이 표현을 아예 안 썼을까요? 아닙니다. 다윈도 나중에 이 말을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건 1869년, 『종의 기원』 다섯 번째 개정판에서였습니다. 초판 출간 이후 열 해가 지난 시점이었죠. 다윈은 공동 진화론 제창자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 표현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자연선택'을 버린 게 아니라, 두 표현을 나란히 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즉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적자생존은 스펜서가 1864년에 만들고, 다윈이 1869년에 빌린 표현입니다.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적자생존의 '적자(適者, the fittest)'는 무엇을 뜻할까요?

여기서 가장 흔한 오해가 생깁니다. 사람들은 '최강자'나 '가장 크고 힘센 개체'를 떠올리지만, 진화론에서 fitness, 즉 적합성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생물학적 fitness는 단 하나를 뜻합니다. 자손을 얼마나 남기느냐, 즉 번식 성공률입니다.

다윈이 말한 '적합한'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지금, 이 장소, 이 환경에 잘 맞아들어가는 것. 마치 퍼즐 조각처럼. 운동선수 같은 개체가 아니라, 그 빈 칸에 딱 맞는 조각이 살아남는 겁니다. 추운 곳에서는 두꺼운 털이 적합하고, 어두운 밤숲에서는 검은 빛깔이 적합합니다. 환경이 달라지면 어제의 '적자'가 오늘의 '부적자'가 됩니다.

다윈도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가장 적합한(the fittest)'이 아니라 사실은 '더 적합한(the fitter)'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봤습니다. 생존은 절대적 강함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적합성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윈이 한 번도 하지 않은 말

적자생존과 함께 다윈의 말로 널리 퍼진 문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이 아니고, 가장 지능이 높은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동기부여 강연, 경영서, 기업 슬로건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 말입니다. 그러나 다윈의 어떤 저작에도, 어떤 편지에도 이 문장은 없습니다. 다윈 서신 프로젝트(Darwin Correspondence Project)는 이를 다윈이 한 번도 한 적 없는 말 목록에 공식 포함시켰습니다.

이 말의 실제 출처는 레온 메긴슨(Leon C. Megginson)이라는 미국 경영학 교수입니다. 1963년, 그가 학술 발표에서 다윈의 이론을 풀어 설명하며 쓴 문장이었죠. 인용부호도 없이 자신의 해석으로 쓴 문장이, 시간이 지나며 다윈의 직접 인용인 것처럼 퍼진 겁니다.

심지어 미국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의 바닥에 이 문장이 다윈의 말로 새겨져 있었다가, 오류가 확인되고 나서야 정정된 일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다윈주의'라는 왜곡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이 특히 위험하게 쓰인 맥락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입니다.

허버트 스펜서는 생물 진화 이론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려 했습니다. 빈곤한 사람은 '부적자'이므로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강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도 자연의 이치라는 논리였죠. 이 사상은 19세기 말 식민지 팽창과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고, 더 나아가 우생학과 인종차별의 이론적 뒷받침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윈의 생각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윈은 자연선택이 '진보'를 향한 방향성 있는 운동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진화는 목적 없이, 환경에 따라 제각각 방향을 잡는 과정입니다. 문명이 자연보다 우월하다거나,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진화적으로 앞선다는 개념은 『종의 기원』어디에도 없습니다.

철학자 다니엘 데넷(Daniel Dennett)은 사회적 다윈주의를 "다윈적 사고의 혐오스러운 오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종의 기원』이 실제로 말한 것

그렇다면 다윈이 진짜 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핵심은 이렇습니다. 개체마다 조금씩 다른 변이가 있고, 그 변이 중 환경에 더 잘 맞는 것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 이것이 누적되어 수천 세대, 수만 세대를 거치면 종이 달라진다. 이 과정에는 목적도 방향도 없다. 강해지려는 의지도, 더 높은 존재로 진화하려는 계획도 없다. 그저 지금 이 환경에 조금 더 맞는 형질이 다음 세대에 더 많이 남을 뿐이다.

다윈의 핵심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각각의 미세한 변이가 유용하다면, 그것은 보존된다."

힘 있는 자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 잘 맞는 자가 살아남는다. 이것이 자연선택이고, 이것이 진화입니다.

오해 하나가 바꾼 것들

'적자생존'이라는 네 글자에 담긴 오해는 생각보다 큰 결과를 낳았습니다. 빈곤을 게으름의 결과로 보는 시각, 경쟁을 자연의 법칙이라 합리화하는 논리, 약자를 도태되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편견까지.

다윈은 자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이런 해석들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인간이 가진 도덕 감각, 타인을 돕는 본능 역시 진화의 산물이라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돕는 능력도,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형질이라는 뜻이었죠.

진화는 경쟁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협력도, 공감도, 이타심도 진화가 선택한 형질입니다.

읽어볼 만한 이유

『종의 기원』은 저작권이 만료된 공유저작물입니다. 길고 어렵지만, 다윈이 직접 쓴 문장들은 생각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합니다. 확신에 찬 주장보다 끊임없는 의문과 관찰이 더 많습니다. 오해로 알려진 이론보다, 원문이 훨씬 흥미롭습니다.

출처

#종의기원#다윈#진화론#자연선택#적자생존#고전#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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