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한 입 요약

치욕을 견디고 쓴 책 — 사마천 『사기』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택한 사람이 있다. 역사서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보다 더한 형벌을 선택한 이유

기원전 99년, 중국 한나라 조정에서 한 남자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이름은 사마천(司馬遷). 황실 역사관이었던 그는 전쟁에서 패해 포로가 된 장수 이릉(李陵)을 변호했다가 황제 무제의 노여움을 샀다. 군신(群臣) 모두가 이릉을 비난하는 자리에서 혼자 그의 충절을 두둔했기 때문이다.

판결은 가혹했다. 사형이었다. 그런데 사마천은 목숨을 구걸했다. 단, 죽음 대신 궁형(宮刑)을 선택했다. 궁형이란 남성의 성기를 제거하는 형벌로, 당시 사회에서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으로 여겨졌다. 사대부라면 치욕 앞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시대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사마천은 왜 치욕을 택했는가?

아버지의 유언, 그리고 미완의 역사서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한나라 조정의 태사령(太史令), 즉 역사 기록을 담당하는 고위 관직이었다. 사마담은 평생의 염원으로 중국의 고대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통사(通史)를 편찬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원전 110년,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임종 자리에서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죽거든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되어라. 태사가 되거든 내가 짓고자 했던 역사서를 완성하라." 사마천은 눈물을 흘리며 그 유언을 가슴에 새겼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사마천은 태사령 자리에 올라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중국 각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문헌을 모으고, 유적지를 답사하고, 노인들의 증언을 채록했다. 오제(五帝) 시대부터 자신이 살아가는 한나라 무제까지, 약 3천 년에 달하는 역사를 담는 방대한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었다. 그 원고가 궁형 선고를 받던 그 순간, 절반도 채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치욕 속에서 쓴 편지, 보임안서

기원전 99년 투옥된 사마천은 이듬해 궁형을 집행당하고 약 3년의 옥살이 끝에 기원전 97년에 출옥했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다. 당대 사람들의 눈에 그는 황제에게 맞서다 굴복한 겁쟁이이자,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을 받은 채 살아남은 자였다.

그 무렵 옛 친구 임안(任安)이 편지를 보냈다. 임안의 원본 편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학계는 그가 황제에게 어진 인재를 천거해달라—사실상 자신을 구해달라—고 사마천에게 부탁한 것으로 본다. 임안은 황태자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을 앞두고 있었다. 사마천은 긴 답장을 썼다. 이것이 바로 『보임안서(報任安書)』, 즉 임안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편지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이미 궁형을 당한 몸이라 조정에 영향력이 없다는 처지를 밝히면서도, 왜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지를 스스로 해명하는 말들을 남겼다.

나는 치욕을 당한 뒤 죽지 않았다. 용기가 있어서도, 두려워서도 아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편지에서 그는 역사 속 위인들을 나열했다. 주나라 문왕은 감옥에 갇혀 『주역』을 완성했고, 공자는 온갖 고난 속에서도 유랑하며 『춘추』를 썼다. 굴원은 추방당해 『이소』를 지었고, 손빈은 다리를 잘린 채 병법서를 완성했다. 이른바 '발분저서(發憤著書)', 즉 분노와 억울함을 글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계보였다. 사마천은 자신도 그 계보에 서고자 했다.

130권, 52만 6500자의 완성

기원전 91년경, 『사기(史記)』가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어 학계와 위키백과는 기원전 91년경을 통용하나, World History Encyclopedia는 기원전 94년경(c. 94 BCE)으로 기재하는 등 출처마다 편차가 있다.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지 약 8년 만의 일이다.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총 130권에 52만 6500자. 전설의 황제 헌원씨(軒轅氏)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까지 약 3천 년의 역사가 담겼다. 왕과 제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상인·자객·협객·의원·유세객처럼 민초에 가까운 인물들의 이야기도 열전에 수록되었다. 이것이 『사기』가 단순한 왕조 연대기가 아닌 이유다.

특히 기전체(紀傳體)라는 새로운 서술 방식은 이후 중국의 모든 정사(正史)가 따르는 전범(典範)이 되었다. 중국 역대 24개 정사를 묶은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에서 『사기』는 으뜸으로 꼽힌다.

치욕을 견디는 것이 진짜 용기일 때

사마천이 죽음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당대의 상식대로 명예로운 사대부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기』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불태워진 수많은 책들, 전란으로 소실된 기록들을 복원한 이 방대한 역사서는 사라졌을 것이다.

『보임안서』에서 사마천은 이렇게 썼다. 죽음이 두려워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할 일을 마치지 못했다. 그것이 완성될 때,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죽어야 할 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순간에도, 붓을 내려놓지 않은 자. 그 치욕의 8년이 없었다면 인류는 가장 위대한 역사서 중 하나를 잃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사마천의 선택은 비겁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긴 용기였다. 단 한 번의 죽음보다, 치욕을 안고 수십 년을 버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세상이 당신을 틀렸다고 말할 때, 당신은 무엇을 놓지 않고 있는가. 사마천은 그 대답을 130권 52만 자로 남겼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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