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 소녀가 만든 괴물
1816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빌라 디오다티.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한 뒤 유럽 하늘은 재로 뒤덮였다. 여름인데 기온이 내려가고,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역사는 이 해를 "여름 없는 해"라 부른다. 야외로 나갈 수 없었던 영국 시인 바이런 경과 그 일행은 벽난로 앞에 모여 유령 이야기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밤 바이런이 제안했다. "우리 각자 귀신 이야기를 하나씩 써보는 건 어떨까?"
그 자리에 있던 열여덟 살 소녀 메리 고드윈은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반쯤 깬 꿈"에서 한 장면을 보았다. "불경스러운 기술을 공부한 창백한 학생이 자신이 조립한 것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을 메리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전율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을 독자도 두려워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로부터 2년 뒤인 1818년 1월 1일,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런던에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초판 500부. 저자 이름은 없었다. 세상은 '그'가 누군지 몰랐다.
진짜 괴물이 누구인가라는 질문
이 소설이 오해받는 방식이 있다.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피조물, 소설 속에서 이름조차 없는 '그 존재'가 실제 이야기의 중심이다.
이 혼동 자체가 메리 셸리의 통찰을 보여 준다. 우리는 너무 쉽게 '괴물처럼 생긴 것'을 괴물이라 부르고, 정작 더 무서운 것, 즉 책임을 방기한 창조자는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설의 부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가 이 구조를 미리 알려준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가 영원한 벌을 받는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의 영역인 생명 창조에 도전했다가 끝없는 비극으로 벌을 받는다. 두 이야기 모두 한 가지 질문을 향해 달린다. "힘을 얻은 자는 그 결과에 어디까지 책임지는가?"
갈바니즘과 창조의 유혹
메리 셸리가 이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순전한 상상만이 아니었다. 그 여름 밤 빌라 디오다티의 토론 주제 중 하나가 갈바니즘이었다. 이탈리아 과학자 루이지 갈바니가 1780년에 발견한 것, 즉 전기 자극으로 죽은 개구리 다리가 움직인다는 실험 결과다.
갈바니의 조카 조반니 알디니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1803년 런던 뉴게이트 형무소에서 사형 집행된 범죄자의 시신에 전기를 흘렸다. 목격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턱이 경련을 일으키고, 한쪽 눈이 실제로 떠졌다"고 한다. 신문들은 이 공개 실험을 대서특필했고, 사람들은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메리 셸리는 이 모든 과학적 맥락을 흡수했고, 소설 속 빅터는 "갈바니즘이 그런 가능성을 암시했다"며 피조물에 생명의 불꽃을 불어넣는다.
과학이 신의 영역을 넘보던 시대의 공기가 고스란히 소설 안에 담긴 것이다.
피조물이 밀턴을 읽었을 때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장면은 피조물이 홀로 교육받는 과정이다. 그는 버려진 가방 안에서 세 권의 책을 발견한다. 밀턴의 『실낙원』,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책들을 읽으며 피조물은 언어를 익히고,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한다.
그는 『실낙원』에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읽으며 창조자 신이 아담에게 이브를 주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빅터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나에게 동반자를 주지 않는가?" 이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도덕철학적 질문이다. 창조자는 피조물에게 어디까지 의무를 지는가.
메리 셸리가 설계한 이 피조물은 처음부터 폭력적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가정을 몰래 지켜보며 따뜻함을 동경했고, 봄꽃이 피는 것을 보며 기뻐했고, 남몰래 이웃집 땔감을 대신 쌓아주기도 했다. 그가 달라진 것은 자신의 외모만으로 거부당하고, 창조자로부터 버려졌을 때였다.
어머니 없이 태어난 소설, 어머니를 잃고 쓴 소설
메리 셸리는 태어난 지 열하루 만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바로 18세기 여성 인권 운동의 선구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는 딸을 낳다가 죽었다. 메리 셸리는 평생 이 사실을 안고 살았다.
학자들은 소설 속 피조물의 심리 — 창조자에게 버려지고, 자신이 세상에 왜 왔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존재 — 가 이 개인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을 보자마자 달아나는 장면은, 수백 년을 관통하는 상처의 은유처럼 읽힌다. 만들어놓고 버리는 것, 그것이 소설이 말하는 가장 큰 죄악이다.
200년이 지나도 유효한 질문
1818년 초판 익명 출판 당시, 비평가들은 저자가 남성이라고 추측했다. 월터 스콧은 퍼시 셸리의 작품으로 오해했다. 한 매체는 "여성이 이런 주제를 다룰 자격이 없다"며 공격했다. 2년 뒤인 1821년, 프랑스어 번역본에서 처음으로 메리 셸리의 이름이 실렸다.
열여덟 살 소녀가 쓴 소설은 200년이 넘도록 살아남았다. 그것도 단순한 공포 소설로서가 아니라, 유전공학·복제·인공지능의 시대마다 반복해서 꺼내 읽히는 경전으로. "프랑켄슈타인적"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CRISPR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의 통제 문제를 논하는 학술 논문에서도 등장한다.
메리 셸리가 던진 질문은 하나다. "당신은 무엇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당신에게서 버려졌을 때,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괴물은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 괴물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대개, 창조자의 손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