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여름날, 한 여자가 춤추기 시작했다
1518년 7월 14일, 신성로마제국의 도시 스트라스부르(현재 프랑스 알자스 지방). 무더운 여름날 오후, 트로페아 부인이라는 한 여성이 반목조 가옥이 늘어선 좁은 골목으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음악도 없었고, 축제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그녀의 팔을 붙잡고 멈추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녀는 다음 날 아침에도 피와 부기로 부풀어 오른 발로 다시 일어나 춤을 계속했습니다.
사흘이 지나자 수십 명이 그녀를 따라 춤추기 시작했고, 일주일 만에 서른여섯 명 이상이 거리에서 몸을 흔들었습니다.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는 사백 명에 이르렀다고 당시 연대기는 기록합니다.
그들은 춤이 즐거워서 춘 게 아니었다
이것이 단순한 축제의 소동이었다면, 역사에 이렇게까지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춤추는 사람들은 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명을 지르고, 도움을 청하면서도, 발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마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은 쉬지 않고 춤췄습니다. 밤에도, 빗속에서도, 기절 직전까지도. 일부는 발이 살이 벗겨져 피를 흘리면서도 멈추지 못했고, 역사 기록에 따르면 하루 최대 열다섯 명씩 탈진·심장마비·뇌졸중으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이 사건에서 총 사망자 수는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도시가 내린 끔찍한 처방
당황한 스트라스부르 시 당국은 의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의사들의 판단은 "열혈(熱血)—뜨거운 피가 끓어오른 것이니, 더 많이 춰야 식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의학에서는 신체의 균형을 무너뜨린 '과잉 체액'이 이런 증상을 유발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판단을 받아들인 시 당국은 충격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길드 회관과 시장 광장에 무대를 세우고, 북과 바이올린·피리·뿔피리 연주자 수십 명을 고용해 춤을 더 부추긴 것입니다. 심지어 전문 무용수들을 불러 모범을 보이게까지 했습니다. "더 춰야 낫는다"는 논리였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환자들은 탈진과 심장마비로 하나둘 쓰러지며 죽어 나갔습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당국은 무대를 철거하고 음악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결혼식과 종교 행사에서도 현악기만 허용하는 긴급령을 내렸습니다.
성(聖) 비투스의 저주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은 종교였습니다. 시 당국은 춤추는 환자들을 스트라스부르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사베른의 성 비투스 성지로 이송했습니다. 사제들은 춤추는 사람들을 성 비투스의 목조 조각상 아래 세우고, 붉은 신발과 성스러운 십자가를 주었으며, 성유를 발랐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환자들은 나흘에서 엿새 만에 춤을 멈췄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사건이 이 성인과 연결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민간 신앙에는 성 비투스가 자신을 모욕한 자에게 제어할 수 없는 춤을 저주로 내린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그 저주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병은 훗날 '성 비투스 춤(Saint Vitus' Dance)'이라 불리게 됩니다.
이게 처음도 아니었다
1518년의 사건이 유독 규모가 컸을 뿐, 춤추는 역병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374년에는 라인강과 모젤강 유역 전역에서 수천 명이 동시에 춤추는 대규모 사건이 기록되었고, 그 이후 1518년까지 같은 지역에서만 열 차례 이상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중세 독일과 스위스,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집단 발병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이를 총칭해 코레오마니아(Choreomania), 즉 춤 광기라고 합니다.
스트라스부르 1518년 사건이 유독 유명한 이유는 도시 의회 문서·의사 기록·연대기 등 다수의 1차 사료가 실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민담이나 전설이 아닙니다.
무엇이 그들을 춤추게 했나 — 두 가지 설
오늘날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가설을 놓고 논쟁합니다.
맥각 중독설
호밀 빵에 핀 곰팡이(맥각, Claviceps purpurea)에는 환각을 일으키는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맥각은 중세 유럽에서 '성 안토니우스의 불'이라는 이름의 집단 중독 사건을 여러 번 일으킨 바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존 월러(John Waller)는 이 설에 결정적 반론을 제시합니다. 맥각 중독은 사지 혈관을 수축시켜 극심한 통증과 괴사를 유발합니다. 그 상태에서 수일 동안 지속적으로 춤을 추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집단 심인성 질환설
현재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설은 집단 심인성 질환(Mass Psychogenic Illness)입니다. 1518년의 스트라스부르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도시였습니다. 3년에 걸친 극심한 기근, 반복되는 페스트의 습격, 매독의 유행, 잦은 홍수와 기록적인 혹서. 사람들은 공포와 굶주림과 종교적 불안이 복합적으로 쌓인 극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월러는 이 조건 아래에서 '성 비투스에게 저주받을 수 있다'는 뿌리 깊은 민간 신앙이 방아쇠가 되어, 절망이 몸의 통제권을 빼앗는 심인성 반응으로 폭발했다고 봅니다. 트로페아 부인의 춤이 하나의 '허락'이 되었고, 공포가 공포를 전염시키듯 증상이 번졌다는 것입니다.
5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이유
집단 심인성 질환은 중세에만 있던 일이 아닙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도 학교·공장·군부대에서 유사한 사례가 꾸준히 보고됩니다. 집단이 극도의 스트레스 아래 같은 믿음을 공유할 때, 증상은 몸을 통해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1518년 스트라스부르의 사람들은 미신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보다 훨씬 가혹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해 여름, 스트라스부르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춤을 멈추고 싶어 했지만 — 멈출 수 없었습니다. 가장 서늘한 진실은, 그것이 저주가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