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의 괴담 한 조각

아홉 명이 한밤에 텐트를 찢고 도망쳤다 — 디아틀로프 사건

1959년 2월, 영하 30도 우랄산맥에서 아홉 명의 등반가가 맨발로 텐트를 찢고 뛰쳐나갔다. 그들을 몰아낸 것이 무엇인지, 공식 수사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평범한 등반 계획, 열 명의 청춘

1959년 1월 23일, 소련 스베르들롭스크주. 우랄 공과대학 학생들과 졸업생으로 이루어진 열 명의 등반대가 기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우랄산맥 북부 오토르텐산. 당시 소련 등산 등급 기준 최고 난이도인 3급 원정이었다.

대장은 스물세 살의 이고르 댜틀로프(Igor Dyatlov). 공과대 우등생이자 경험 많은 겨울 원정가였다.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름 캠프나 주말 하이킹 수준이 아니라, 장거리 동계 산행을 여러 차례 완주한 숙련자들이었다.

출발 사흘째, 대원 유리 유딘이 관절 통증을 이유로 홀로 되돌아갔다. 그 결정이 그의 목숨을 건졌다. 나머지 아홉 명은 계속 나아갔다.

"죽음의 산"에 텐트를 쳤다

1959년 2월 1일. 아홉 명은 홀라트샤흘(Kholat Syakhl)산 동쪽 사면에 텐트를 설치했다. 원래 계획보다 조금 이른 야영이었다. 기상이 좋지 않아 능선을 가로질러 숲까지 내려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홀라트샤흘. 이름의 뜻은 만시어로 "죽음의 산(Dead Mountain)" 이다. 현지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사냥감이 없는 산"으로도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텐트를 친 날 밤. 그 뒤의 기록은 없다.

26일 뒤 수색대가 발견한 것

복귀 예정일인 2월 12일이 지나도록 원정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색대가 파견됐고, 2월 26일 비로소 텐트를 찾아냈다.

텐트는 원형 그대로였다. 무너지지 않았다. 내부에는 신발, 방한복, 식량, 카메라, 일기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홉 명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텐트 한쪽이 찢겨 있었다. 칼로 그어진 구멍. 그것도 안쪽에서 바깥으로 그어진 칼집이었다. 재봉사가 나중에 확인했다. 직물이 안쪽에서 눌리면서 잘린 흔적이라고.

그들은 스스로 텐트를 찢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기온은 영하 25도에서 30도 사이. 강풍이 불고 있었다.

시신들이 보낸 마지막 발자국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홉 명 모두의 발자국. 고개 반대편 숲 끝까지, 약 1.5킬로미터 북동쪽으로 이어졌다. 도중에 눈에 덮여 발자국이 보이지 않게 된 지점도 있었지만, 흔적의 방향은 숲을 향해 있었다.

공황 상태에서 뛴 흔적이 아니었다. 걸어간 발자국이었다.

처음 발견된 시신 두 구는 전나무 한 그루 아래서 나왔다. 유리 도로셴코와 유리 크리보니셴코. 두 사람은 속옷 차림이었다. 나뭇가지가 꺾여 있었고, 불을 피우려 한 흔적이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에는 나무껍질을 긁어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나무에서 텐트 방향으로 세 구가 더 발견됐다. 이고르 댜틀로프, 지나이다 콜모고로바, 루스템 슬로보딘. 이들도 속옷이나 얇은 옷 차림이었다. 세 명은 서로 수백 미터씩 떨어져 각자 쓰러져 있었다. 발자국의 방향은 텐트 쪽으로 향해 있었다. 돌아가려 했던 것이다.

나머지 네 구는 두 달 뒤인 5월 4일에야 발견됐다. 텐트에서 약 75미터 떨어진 계곡 아래, 4미터 깊이의 눈 속에 묻혀 있었다.

설명되지 않는 부상들

처음 다섯 명의 공식 사인은 저체온증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설명이 필요했다. 숙련 산악인들이 왜 방한 장비를 두고 맨발로 나갔는가.

그런데 나중에 발견된 네 구의 상태는 달랐다. 법의학 부검 결과:

결정적인 것은, 그 심각한 내부 손상이 있으면서도 외부 상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피부는 멀쩡했다. 부검의는 어떤 무기나 낙하로도 이런 외상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더불어 대원 한 명의 옷에서 방사성 오염이 검출됐다고 알려져 있다. 수치는 기준 초과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시신의 피부가 오렌지빛을 띠고 있었다고 수색대원들은 증언했다.

공식 결론: "불가항력적 자연력"

1959년 5월, 소련 검찰은 수사를 종결했다. 공식 사망 원인: "불가항력적 자연력(compelling natural force)에 의한 사망." 구체적인 자연력이 무엇인지는 적시되지 않았다. 수사 기록은 오랫동안 기밀로 분류됐다.

60년이 지나 러시아 검찰은 2019년 재수사를 시작했고, 2020년 7월 최종 결론을 발표했다. 소규모 눈사태 또는 설판 붕괴가 텐트를 덮쳤고, 극한의 공황 속에서 탈출했다는 것이었다. 2021년 스위스 EPFL과 ETH 취리히의 공동 연구팀(Johan Gaume·Alexander Puzrin)은 완만한 경사에서도 특정 조건에서 눈 슬라브 붕괴가 심각한 압력 외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모델을 학술지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했다.

하지만 열린 질문들은 여전히 남는다. 방사성 오염의 출처, 내부에서 텐트를 찢은 이유, 외상 없는 골절, 그리고 숙련 등반가들이 왜 방한복을 두고 맨발로 걸어나갔는가.

디아틀로프 고개라는 이름

1961년, 그 산에는 이름이 붙었다. 디아틀로프 고개(Dyatlov Pass). 원정대를 이끌었던 이고르 댜틀로프의 이름이다.

텐트가 있던 홀라트샤흘, 죽음의 산. 그 이름처럼 그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출처

#괴담#미스터리#실화#소련#우랄산맥#디아틀로프#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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