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로마 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여느 때처럼 분주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거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빵을 굽고 있었다. 도시 너머에는 베수비오라는 산이 늘 그렇듯 조용히 솟아 있었다. 누구도 그 산이 화산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날이 마지막 하루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서기 79년, 전통적으로 8월 24일로 전해지는 그날(가을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베수비오가 깨어났다.
하늘에서 돌이 내렸다
화산은 거대한 재와 부석의 기둥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곧 작은 돌과 재가 비처럼 도시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곳에는 한 시간에 수십 센티미터씩 부석이 쌓였다. 사람들은 황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차오르는 돌더미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많은 이들이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그건 치명적인 선택이었다. 쌓인 부석의 무게를 못 이긴 지붕과 벽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기가 덮쳤다
진짜 재앙은 그다음이었다. 분출의 두 번째 국면에서, 초고온의 화산쇄설류가 무서운 속도로 도시를 덮쳤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거의 즉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도시 전체가 수 미터 두께의 화산 물질 아래 통째로 묻혔다. 폼페이에서는 약 2천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발굴에서 천 명이 넘는 희생자의 흔적이 확인됐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 빈 공간
수백 년이 흘렀다. 1748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다. 그런데 굳은 화산재 속에서, 기이한 빈 공간들이 발견됐다. 사람의 몸이 재에 둘러싸인 채 굳은 뒤, 안쪽의 살과 옷은 세월과 함께 썩어 사라지고, 그 형태 그대로의 텅 빈 틀만 남은 것이다. 사람 모양의 빈 공간. 거기엔 종종 뼈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석고가 되살린 마지막 순간
1863년, 발굴 책임자였던 주세페 피오렐리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그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굳히는 것이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석고는 희생자의 마지막 자세를 그대로 되살려냈다. 얼굴을 감싼 사람, 웅크린 사람, 작은 아이, 서로를 끌어안은 가족. 옷의 주름과 표정까지 또렷했다. 지금까지 백 개가 넘는 석고상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2천 년 전의 마지막 순간을 박제한 채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가 읽은 게 전부일까
그런데 최근 연구는 또 다른 서늘함을 던진다. 석고상의 뼈에서 추출한 고대 DNA를 분석했더니, 우리가 자세만 보고 짐작했던 이야기가 종종 틀렸음이 드러난 것이다. 아이를 안은 어른이 어머니라 여겨졌으나 혈연이 아니었고, 성별을 잘못 추정한 경우도 있었다. 2천 년 전의 마지막 순간은 박제되었지만, 그 순간에 담긴 사연까지 우리가 다 읽어낸 건 아니었던 셈이다.
한 줄 정리
폼페이의 석고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빈 공간'이다. 그 비어 있음이, 어떤 시신보다 또렷하게 그날의 마지막 순간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