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선 검은 새
검은 망토를 발끝까지 두르고, 얼굴에는 길고 뾰족한 새 부리, 그 위로 둥근 유리 눈. 손에는 긴 막대를 든 사람 크기의 새. 이 형상이 당신 집 문 앞에 나타나면, 그건 한 가지 의미였다. 죽음이 아주 가까이 왔다는 것. 우리는 이 모습을 '흑사병의 얼굴'로 기억한다. 그런데 여기에 묘한 사실이 하나 숨어 있다.
흑사병, 유럽을 삼키다
흑사병은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페스트 대유행이다. 1340년대 후반 시칠리아 항구에 닿은 뒤, 불과 몇 년 만에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을 삼킨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는 텅 비었고, 시신을 묻을 사람조차 모자랐다. 그야말로 종말 같은 풍경이었다. 그렇다면 그 부리 가면을 쓴 의사들도 이때 거리를 누볐을까. 놀랍게도, 아니다.
가면은 300년 뒤에 나타났다
그 상징적인 부리 가면과 복장은 흑사병이 휩쓴 14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면이 등장한 건 그로부터 약 300년 뒤인 17세기다. 보통 프랑스 루이 13세의 궁정 의사였던 샤를 드 로름이 1619년 무렵 고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복장은 1656년 로마와 나폴리를 덮친 페스트 때 널리 퍼지며 유럽 문화에 깊이 새겨졌다. 즉 우리가 흑사병의 얼굴이라 믿는 그 모습은, 사실 한참 뒤 시대의 의상인 셈이다.
부리 속에는 꽃과 향료가 있었다
가면의 긴 부리 안에는 말린 꽃과 허브, 향료가 채워져 있었다. 장미나 카네이션 같은 마른 꽃, 라벤더, 박하, 장뇌 같은 것들이었다. 이유는 당시의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병이 '나쁜 공기', 즉 고약한 냄새를 통해 퍼진다고 믿었다. 이것을 미아즈마 이론이라 한다. 그래서 부리에 향기로운 것을 채워 그 나쁜 공기를 막으려 한 것이다. 의사들은 밀랍을 먹인 긴 가죽 코트와 장갑, 챙 넓은 모자를 갖췄고, 환자를 직접 만지지 않으려 긴 막대를 들고 다녔다.
보이지 않는 진짜 범인
문제는, 그들이 막으려던 적이 처음부터 틀렸다는 점이다. 페스트의 진짜 원인은 나쁜 공기가 아니라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라는 세균이었다. 이 세균은 쥐에 붙은 벼룩을 통해 사람에게 옮겨졌다. 그러나 세균의 존재가 밝혀진 건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니 부리 가면 속 향료는, 보이지 않는 진짜 범인 앞에서 거의 무력했다. 정작 페스트가 닥치면 동네 의사들은 도망치기 일쑤였고, 페스트 의사라는 직업은 가장 위험하고 기피되는 일이었다.
한 줄 정리
흑사병의 가장 유명한 얼굴은, 사실 엉뚱한 시대에서 온 의상이며 엉뚱한 적과 싸우고 있었다. 죽어가는 이에게 그 부리 새는 치료자가 아니라, 그저 마지막으로 본 형상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