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유리 너머의 푸른 빛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두꺼운 방탄유리 안에 깊고 푸른 다이아몬드 하나가 빛난다. 45캐럿이 넘는 이 보석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다이아몬드로 꼽힌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아름답지만, 절대 갖고 싶지는 않은 보석이라고. 소유자마다 불행과 죽음이 따랐다는, '저주받은 보석'이기 때문이다.
저주의 전설
전설은 17세기 한 프랑스 상인에게서 시작한다. 보석상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가 인도에서 거대한 푸른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그 보석을 힌두 신상의 눈에서 뽑아냈고, 분노한 사제들이 보석을 가진 자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한다. 그 후 타베르니에는 들개 떼에게 갈가리 찢겨 죽었다고 전해진다. 보석은 프랑스 왕 루이 14세에게 팔렸고, 다시 깎여 '프렌치 블루'가 되었다. 훗날 이 보석을 물려받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가장 유명한 비극, 매클레인 부인
20세기 초, 이 보석은 미국의 부유한 상속녀 에벌린 월시 매클레인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비극이 잇따랐다. 아홉 살 난 아들이 교통사고로 숨졌고, 딸은 약물 과용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남편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저주의 증거라 수군거렸다. 그렇게 호프 다이아몬드는 저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전설과 기록을 갈라 보면
그러나 전설을 기록과 나란히 놓으면, 이야기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저주의 출발점인 타베르니에. 그는 들개에게 찢겨 죽지 않았다. 실제로는 여든네 살까지 천수를 누리며 부와 명예 속에 살았다. 보석을 신상에서 훔쳤다는 이야기조차, 학자들은 근거가 없다고 본다. 그 푸른 다이아몬드의 짝도, 문제의 신상도 끝내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저주의 토대 자체가 후대에 지어진 이야기였다.
저주를 판 사람들
더 서늘한 건 그다음이다. 이 저주 이야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살이 붙고 부풀려졌다. 특히 보석상 피에르 카르티에는 이 저주 전설을 적극 활용해, 매클레인 부인에게 보석을 비싸게 팔았다. 불길한 이야기가 오히려 보석의 값과 매력을 끌어올린 것이다. 매클레인 부인의 비극은 분명 가슴 아픈 사실이지만, 그것이 저주의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같은 시기, 같은 보석을 물려받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오히려 관람객이 폭증하며 세계적인 보석 컬렉션을 갖추게 됐다. 박물관 측은 농담처럼 말한다. 우리에게 이 보석은 오직 행운만 가져다줬다고.
한 줄 정리
호프 다이아몬드의 진짜 주술은 초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이야기 그 자체였다. 사람이 지어낸 저주가, 그 돌을 더 빛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