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하늘이 갈라졌다
1908년 6월 30일, 러시아 시베리아 포드카멘나야 퉁구스카 강 유역. 현지 시각 오전 일곱 시 열칠 분.
바실리 이바노프라는 사람은 밭을 갈다가 북쪽 하늘이 쪼개지는 것을 봤다고 기록했다. 또 다른 목격자 세멘 세묘노프는 퉁구스카 강에서 남쪽으로 약 육십오 킬로미터 떨어진 바나바라 교역소에 있었다. 그의 증언은 이렇다.
"갑자기 하늘이 둘로 갈라지며 산 위로 불이 넓게 나타났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셔츠에 불이 붙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북쪽에서 강한 열기가 왔습니다."
세묘노프는 앞으로 나뒹굴었다가 일어났다. 건물이 흔들렸다.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문이 요동쳤다. 잠시 후 광음이 들렸다. 마치 대포가 여러 발 연속으로 발사되는 소리였다.
그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들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폭발음은 약 천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렸다고 알려져 있다. 유리창이 깨졌고, 건물이 흔들렸고, 지진계가 반응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땅
폭발이 일어난 곳은 시베리아 타이가의 한가운데였다. 나무만 끝없이 펼쳐진 오지. 가장 가까운 마을조차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소식이 바깥 세계로 전해졌지만 곧 잊혔다. 그 해 러시아는 곧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고, 세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을 치렀다.
최초의 과학 조사는 폭발로부터 무려 열아홉 해가 지난 1927년에 이루어졌다. 레오니드 쿨리크(Leonid Kulik)라는 소련의 운석 전문가가 기차와 말, 그리고 두 발로 수주에 걸쳐 타이가를 헤치고 현장에 도달했다.
그가 본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여든 명분의 구역, 나무 팔천만 그루
쿨리크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침묵이었다. 약 이천백오십 제곱킬로미터, 런던 면적을 훌쩍 넘는 숲이 완전히 쓰러져 있었다. 나무 팔천만 그루가 중심점으로부터 방사형으로 넘어졌다. 마치 거대한 손이 숲 전체를 한꺼번에 쓸어 눕힌 것 같았다.
나뭇가지 하나 없이 줄기만 남은 나무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쓰러져 있었다. 중심점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무는 더욱 처참하게 탄 채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도달했을 때, 쿨리크는 멈췄다.
나무들이 서 있었다.
불에 타 껍질이 벗겨지고 가지가 모두 사라진 채였지만, 중심부의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마치 전신주처럼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학자들은 이것을 '전신주 숲(telegraph-pole forest)'이라고 불렀다. 폭발이 바로 머리 위에서 일어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충격파가 수직으로 내리눌러 나무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가지와 껍질만 날려버린 것이다.
그 중심부에 쿨리크가 기대했던 것이 있어야 했다.
구덩이가 없었다.
사라진 운석
쿨리크는 당황했다. 이 정도 규모의 폭발이라면 수십 미터 깊이의 거대한 분화구가 생겼어야 했다. 하지만 땅은 멀쩡했다. 그는 중심부 근처의 작은 원형 호수들을 분화구로 오인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은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 흔히 생기는 열카르스트 지형이었음이 밝혀졌다.
파편을 찾으려 했지만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운석이 땅에 떨어졌다면 파편이 있어야 했다.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나.
현재 과학계의 정설은 공중 폭발(air burst), 즉 대기권 진입 중 소행성이 고도 오 킬로미터에서 십사 킬로미터 사이에서 공중 분해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직경 약 오십에서 육십 미터의 소행성이 초속 수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대기권에 진입하며 마찰열과 충격압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난 것이다. 물질 대부분이 그 순간 기화했다. 남은 파편은 미세한 먼지가 되어 성층권으로 흩어졌다.
에너지 추정치는 약 십 메가톤에서 삼십 메가톤에 달한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천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폭발 자체는 공중에서 끝났다. 땅에 닿지 않았기 때문에 구덩이가 없었던 것이다.
세계가 알아챈 이상한 밤하늘
퉁구스카 폭발은 지역 사건이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흔적이 남았다.
폭발 직후 며칠 동안, 유럽 전역에서 밤하늘이 밝게 빛나는 현상이 관측됐다. 영국 런던에서는 자정 무렵에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밤이 밝았다. 스웨덴과 스코틀랜드에서는 조명 없이 한밤중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충격파는 독일, 덴마크, 크로아티아, 영국 기상 관측소의 기압계에도 기록됐다. 지진파는 동쪽으로 태평양을 건너 감지됐다. 지구를 두 바퀴 돌았다는 기록도 있다.
수백만 톤의 먼지와 얼음 결정이 성층권에 퍼지면서 대기를 통과하는 빛을 굴절시킨 결과였다. 사건의 흔적은 지구 전체에 수 주간 남아 있었다.
이번엔 우리 차례?
퉁구스카 사건은 인류 역사상 기록된 최대 규모의 충돌 사건이다. 그리고 그것은 운 좋게도 사람이 거의 없는 오지에서 일어났다.
같은 규모의 공중 폭발이 런던이나 서울 상공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무 팔천만 그루를 쓰러뜨린 충격파가 건물과 사람 위로 내리덮였다면.
이런 규모의 소행성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 주기로 지구 근방을 지나간다고 알려져 있다. 1908년 6월 30일의 것은 미리 발견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갈라진 것이다.
그날 세묘노프가 목격한 빛은, 이미 공중에서 사라지는 중인 것이었다. 땅에 도달하기 전에. 그래서 구덩이가 없었다. 구덩이를 만들 시간도 없이, 그것은 하늘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