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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읽지 못한 책 — 보이니치 필사본

60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암호 해독가들이 모두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책은 지금도 아무도 읽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읽히지 않은 책

예일 대학교 바이네케 희귀본 도서관의 어느 서가에는 '엠에스 408'이라고 분류된 낡은 필사본 한 권이 있다. 표지에는 제목도 없고, 저자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암호 해독가들이 수십 년씩 매달렸음에도, 오늘까지 단 한 단어도 해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것이 보이니치 필사본이다.


발견: 1912년, 이탈리아의 오래된 별장에서

1912년, 폴란드계 미국인 고서적상 윌프레드 보이니치는 이탈리아 프라스카티의 빌라 몬드라고네에서 방치된 책 더미를 발굴하다 낯선 필사본 하나를 발견했다. 양피지로 만들어진 이 책에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문자가 빽빽이 채워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기묘한 식물 삽화, 나체의 인물이 기이한 관 속에 들어가 있는 그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천체도가 그려져 있었다.

보이니치는 즉시 이 책이 대단한 무언가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책을 사들여 세상에 공개했다. 그게 오히려 미스터리의 시작이었다.


탄소 연대 측정: 1404년에서 1438년 사이

2009년, 애리조나 대학교 연구팀이 양피지를 대상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실시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이 필사본의 양피지는 1404년에서 1438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뢰도 95퍼센트로 추정된다고 밝혀졌다. 즉 약 600년 전, 중세 후기 유럽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이 책을 썼다.

필사본은 총 240여 쪽으로, 한때는 더 많은 쪽이 있었으나 일부가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여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약초 그림이 가장 많아 126쪽을 차지하고, 천문학 구역, 나체 인물들이 기이한 수조 속에 잠겨 있는 생물학 구역, 우주론 구역, 약학 구역, 그리고 처방전으로 추정되는 텍스트 구역이 이어진다.

전체를 통틀어 약 17만 개의 문자, 3만 5천에서 3만 8천여 개의 단어가 등장한다(출처에 따라 수치가 다소 다르다). 그러나 그 뜻은 아무도 모른다.


소유의 역사: 신성로마제국 황제에서 예수회까지

이 책의 이동 경로는 단편적으로만 추적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가 이 책을 금화 600닢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루돌프 2세는 연금술과 점성술에 심취했던 황제로, 프라하 궁정에 많은 신비주의자들을 불러들인 인물이었다. 당시 그는 이 책이 13세기 수도사 로저 베이컨의 작품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베이컨이 사망한 1292년보다 100년 이상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책은 예수회 수도원을 거쳐 보관되다가, 수 세기 후 이탈리아 별장 창고에서 잠들어 있을 때 보이니치에게 발굴됐다. 1969년, 책 수집가 한스 크라우스가 예일 대학교에 기증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안착했다.


해독 시도: 세계대전 암호 해독가들도 실패했다

보이니치 필사본이 세상에 알려지자, 당대 최고의 암호 전문가들이 뛰어들었다.

윌리엄 프리드먼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미국 암호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그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프리드먼은 수십 년에 걸쳐 이 필사본을 연구했다. 결론은 "이 텍스트는 특정한 언어 형태 규칙을 갖고 있지만, 해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프리드먼은 만년에 이 책이 인공 언어로 쓰였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1950년대에는 미국 국가안보국, 즉 엔에스에이의 비공개 팀이 공식적으로 해독을 시도했다. 존 틸트먼, 프레스콧 커리어 등 당대 최고 암호 전문가들이 나섰다. 커리어는 필사본에 두 가지 서로 다른 언어 변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각각 '에이 언어'와 '비 언어'라고 명명했다. 약초 구역과 약학 구역에서는 한 문체가 주로 쓰이고, 천문 구역과 생물학 구역에서는 다른 문체가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 발견 자체는 중요한 진전이었다. 하지만 해독에는 이르지 못했다.

심지어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도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1차 학술 문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는 기록도 마찬가지로 출처가 불분명하다.


언어인가, 가짜인가

그렇다면 이 책은 진짜 언어를 담고 있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이 텍스트는 지프의 법칙을 따른다. 지프의 법칙이란 자연 언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의 빈도가 두 번째 단어의 딱 두 배라는 규칙이다. 보이니치 텍스트의 단어 빈도 분포는 영어나 라틴어와 비슷한 자연 언어의 패턴을 그대로 보인다. 무작위로 만든 글자 열이라면 이런 패턴이 나타나기 어렵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이 책이 처음부터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품이라는 주장이다. 중세에 신비로운 책을 만들어 황제나 귀족에게 고가에 팔아넘기려 한 사기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정교하게 속일 수 있었다면, 그것 자체가 60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깨지 못한 '완전 범죄'가 된다.


2026년, 가장 최근의 도전

올해 초, 과학 저널리스트 마이클 그레쉬코는 암호학 전문 학술지 크립톨로지아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14세기 이탈리아 카드 게임 '나이베'를 이용한 다단계 암호 방식으로 보이니치 텍스트와 통계적으로 매우 유사한 문자열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이 '나이베 암호' 가설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도구만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 연구 역시 아직 번역은 아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의 한 가능성을 보인 것이지, 내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닫히지 않는 책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암호학자, 언어학자, 역사학자, 수학자, 그리고 인공지능 연구자까지 이 책에 도전했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결론을 냈다.

모른다.

이 책은 지금 예일 대학교 바이네케 도서관 MS 408 서가에 있다. 열람을 신청하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도 아마 읽지 못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암호 해독가들도 읽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그게 이 책의 진짜 정체인지도 모른다. 읽히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책.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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